하데스는 워낙 유명한 게임이다. 곧 2편까지도 나올 정도이니 분석이란 분석은 넘칠 것이며 게임의 재미는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데스를 시작했다.
하데스를 시작하기 전에 접한 인상은 스토리가 재밌고 플레이가 재밌다는 이야기였다.
플레이는 재미있었다. 제법 다양한 무기를 순서를 바꿔가며 메리트를 주는 방식으로 플레이를 유도하고, 중간에 만나게 되는 신들의 축복을 통해 다양한 빌드를 쌓아갈 수 있는 로그라이크의 재미에 충실한 게임이었다. 플레이 초반에는 힘든 과정이 후에는 핵앤슬레쉬처럼 통쾌해지는 순간도 기분 좋았다.
하지만 필자는 반쪽짜리 리뷰인 만큼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 하지 못했다.
이유가 있다면 역시 반복되는 게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하데스의 로그라이크적인 재미를 이끌어낸 설정은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볍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지옥이라는 설정은 죽음에 익숙하며, 플레이어들은 지상으로 나아가는 길에 죽음을 겪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하데스에서 죽음은 사실상 죽음이 아니었다. 플레이의 일환일 뿐이며 돌아오면 항상 강해질 수 있는 구조이기에 지속적인 성장과 빌드의 재미를 유지시킬 수 있는 구조였다.
그렇다면 평판도 좋으며 구조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적은 게임을 필자가 끝까지 해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필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냥 끝까지만 하자 라는 마음이었다.
필자의 마음이 꺾인 것은 어머니인 페르세포네를 만나고 나서 였다.
게임은 4층에서 아버지인 하데스를 꺾고 지상으로 나온 자그레우스가 드디어 페르세포네를 만난다. 그리고 지옥에 묶여있는 몸이기에 오래 못 가 죽고 지옥으로 돌아간다.
여기까지는 좋다. 아무런 반발심이 없었다. 그럴 수 있었다. 게임은 계속 해야하고 아직 나오지 못한 이야기가 잔뜩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한 번 올라가본 지상은 그 다음부터는 더 쉽다. 스스로 제약을 걸지 않는 한 올라가고자 한다면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다. 신들의 많은 축복의 종류에도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무기들의 조작이 그리 어렵지 않으며 각자 개성이 뚜렷하기에 플레이 난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계속해서 페르세포네와 만나게 하는 자그레우스가 하는 행동에 질리고 말았다. 자그레우스는 속시원히 행동하지 못한다. 사실 행동하지만 신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지옥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데스를 따르며, 올림푸스 신들은 자그레우스에게 이런저런 좋은 말과 축복을 내리지만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그렇다면 좋다. 우리에게는 페르세포네가 남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뿔싸. 페르세포네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첫 만남에는 자그레우스가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열쇠는 지옥에 있는 이들에게 있다. 특히 하데스와 닉스에게 열쇠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 번씩 나와서 자기 개성을 뽐내는 대사를 출력하느라 바쁘기만 한 올림푸스 신들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매력이 없었다.
자, 그럼 이제 하데스와 닉스를 어떻게 구워 삶아야 할까. 여기서 게임은 다른 모습으로 필자에게 다가왔다. 지상으로 가겠다! 라는 목표를 가지고 지옥을 등반하는 건 거리낌이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도 자연스러웠으며, 만나게 되는 이들을 미안한 반, 스트레스 해소 반의 마음을 가지고 두들기는 일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상에 한 번 발을 딛고는 자그레우스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필자는 생각했다. 즉, 지상으로 가겠다! 는 더 이상 플레이 동기가 되지 못한다. 어차피 가면 죽으니까 말이다. 지상에 어머니가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어차피 올라가봐야 다시 죽어서 돌아올 뿐이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다 두들겨 패고 지상으로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건 그 방법 밖에 없다. 게임이 제공하는 게 그거 밖에 없으니 말이다.
후우. 그럼 좋다. 페르세포네를 만나며 무언가 달라지겠지. 하지만 우리는 올라가 만난 엄마와 회포를 푸는 대화 몇 개와 '지금 상황이 왜 이렇죠?' '글쎄, 나도 모르는데?' 의 반복적인 대화만을 접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들어난다고 생각한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한 번에 이야기를 다 풀어줄 수는 없다. 죽는 게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를 위해서라도 자그레우스는 더 많이 지하를 뒤집어야 하며 지상에서 다시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겪어야 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나의 입장에서는 지상까지의 등반의 가치가 급락하고 만다. 그 전에는 지상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며, 올라가면 어떻게 되는지 등 지상에 도착하기 위해 지상으로 향하는 던전을 헤집어 놓았다. 이는 목표와 행동 방향이 일치하여 게임에 몰입하기 좋았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지상에 도착하게 되면, 그 가치가 급락하게 된다. 우리는 어차피 죽어서 지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잔뜩 풀어주지도 않는다. 지상에 올라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근거들을 모으던 시절과 위로 올라가는 게 그리 힘들지 않게 된 지금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동일하다. 하지마 시간이며 노력을 더 많이 든다. 아무렴 쉬워졌다고 하더라도 4층이라는 던전을 모두 클리어해야만 끝이 나니까 말이다.
즉, 게임 플레이의 보상이 노력 대비 오히려 줄어드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거기서 필자는 게임을 더 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어차피 가면 죽을텐데 자그레우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저 지옥을 등반한다. 주변 인물들에게 더 접근해서 정보를 얻어내거나 하데스나 닉스에게 더 깊은 대화를 시도하거나 그들을 속이거나 무언가를 유도하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게 필자는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필자에게 페르세포네를 만난 순간부터 게임은 이미 클리어 됐기 때문이다.
클리어 했다면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은 더 큰 보상이라던지?
반복되는 플레이 속에 다른 조합의 재미를 제공했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길이 똑같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점이 필자를 하데스를 끝까지 플레이하지 못하게 했다.
기존 로그라이크의 경우는 끝까지 가면 그대로 끝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수없이 많은 시도가 필요하며 그건 매우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걸 하데스는 적은 스테이지를 설정하는 걸로 방지했다. 하지만 적은 스트레스 만큼이나 성취감의 깊이를 챙길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보다 가볍게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든 설정이 필자에게는 멍청한 반복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만일, 만나게 된 페르세포네가 자그레우스가 다시 올 것을 대비하여 잔뜩 준비를 하고 무언가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했더라도 필자는 게임을 더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자그레우스가 보다 속시원히 하데스와 닉스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면 어땠을까. (여담으로, 아이들은 순풍순풍 낳으면서 다시 쳐들어올 지구인들에 대한 대책은 엄청나게 하지 않는 아바타2의 도입부를 봤을 때 느낀 감정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데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인 구조가 필자에게는 게임을 끝까지 할 수 없게 만들 정도의 단점으로 다가온 경험은 정말 배울 게 많은 시간이었다.
하데스는 재미있는 게임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끝까지 플레이하게 하기 위한 원동력은 스트레스를 줄인만큼 줄어버렸다고 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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